미나미 아와지의 전통예능

미나미 아와지의 전통예능

8세기전반에 쓰인 역사서「古事記(코지키)」와「日本書紀(니혼쇼키)」의 첫머리에는 나라의 탄생 신화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지구상이 아직 혼돈 중에 있을 때 남신(男神)인 이자나기노 미코토와 여신(女神)인 이자나미노 미코토가 하늘에 떠 있는 다리 위에서 창을 바닷속에 꽂아 휘저은 후 들어 올렸을 때 창 끝으로부터 한 방울씩 떨어진 물방울이 굳어져 작은 섬(오노코로시마)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 남신과 여신은 그 섬에 내려와 결혼을 하였고 차례차례로 일본의 국토를 낳았습니다. 최초에 탄생된 섬이 바로 아와지시마였습니다.

아름다운 자연 환경과 사계절의 변화가 뚜렷한 일본에는 여러 가지 전통행사와 전통예능이 있습니다. 일본인은 삼라만상에서 신의 존재를 느끼며 그러한 많은 신과 조상신, 게다가 외부로부터 불러온 신들까지도 받들며 풍작과 번영을 기원했습니다. 대자연 그리고 여러 신들과 더불어 생활하는 가운데 독자적인 전통행사와 전통예능이 탄생했습니다. 아와지시마에서는 신께 올리는 제례에서 신의 가마와 단지리(축제 때 끄는 장식수레이며 제례를 통해 신사에 봉납된다)의 행진, 단지리노래, 신락(무악), 사자무, 여러 춤 등의 신사 예능이 봉납됩니다. 아와지닌교(인형) 조루리 역시 신사예능으로써 탄생한 것으로 지금도 자연과 신을 소중히 여기는 아와지시마 사람들에 의해 지켜지고 있습니다.

아와지 단지리노래

단지리노래의 기원은 메이지 중기 아와지시마에 후톤(布団)단지리가 들어왔을 때입니다. 노래에는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으며 각각 요시다부시(吉田節)、이치부시(市節)등으로 불립니다. 그 후 조루리의 클라이막스 부분을 바꿔 만들어 아마부시(阿万節)라 불리는 현재의 단지리노래가 되었습니다. 최근 아마(阿万) 니시마찌(西町)에서 발견된 「단지리가집 서조 성악단 (檀尻歌集西組聲楽団)」(쇼와5년, 편자 에노모토 쵸우헤이(編者榎本長平))라는 자료에 의하면 우에마찌(上町)에 살고 있던 에노모토 젠뻬이(榎本善平, 코우게츠光月)라는 인물이, 메이지31년(1898)에「이모세야마(妹背山)」, 「즌도헤이(百度平)」, 「이찌노타니 후타바 군기(一の谷嫩軍記)」를, 메이지34년(1901)에 「겐뻬이 누노비키노 타키(源平布引の瀧)」, 메이지38년(1905)에 「에혼타이코우키(絵本太功記)」, 「고시코에(腰越)」 등을 각색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현재 가장 많이 불리워지고 있는 「타마모노마에 아사히노 타모토(玉藻前曦袂) 삼단목(三段目)의 (타마산(玉三))」을 타이쇼시대에 각색한 이는 니시마치(西町)의 무라카미 키헤이(村上亀平)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단지리노래는 입에서 입으로 전승되는 것이 주류이고 시대와 함께 혹은 지역에 때라 가사나 노래하는 방법이 변화해 왔습니다만 「타마산(玉三)」은 가사, 후렴, 사용된 언어도 만들어진 당시 그대로 불리고 있습니다.

아와지 단지리노래 단지리 앞에서 단지리

아마노 후류우 오오오도리 코오도리 (阿万の風流 大踊小踊)

아마 카메오카 하찌만구(阿万亀岡八幡宮)의 하찌만신(八幡神)은 먼저 고대로부터 자리 잡고 있었던 니시마찌 카메가오카(西町亀が岡)의 마쯔우라 코우라신사(松浦高良神社)에 이와시미즈 하찌만구(石清水八幡宮)로부터 분령을 청하여 맞이하였습니다. 그 후 아마 니시마찌(阿万西町)에서 지금의 위치로 이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마 가메오카 하찌만구(阿万亀岡八幡宮)에는 신께 드리는 제사에 특이한 예능이 전승되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우에마찌(上町)의 우지코(氏子)에 의해 봉납된 후류우 오도리(風流踊り)는 가뭄이 계속되어 곤란에 처해있던 마을 사람들이 비를 기원하고, 기원이 이루어진 후 감사의 제사인 「간호도키(願解き)」를 통해 비에 대한 감사, 오곡풍작・향토번영의 기도와 감사의 마음을 담아 신께 봉납하게 된 것입니다. 많은 경비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햑코쿠 오도리(百石踊)」라고도 합니다.

아마노 후류우 오오오도리 코오도리 아마노 후류우 오오오도리 코오도리

사사라오도리 (ささら踊り)

「사사라오도리(ささら踊り)」는 미나미 아와지 후추우(府中)에 있는 후추우 하치만신사(府中八幡神社)의 제사 중 하나로 오랜 옛날부터 전해지고 있는 예능입니다. 2008년3월7일에 미나미 아와지시 무형민속문화재로, 2015년에 효고현 무형민속문화재로 지정되었습니다. 그 기원에 대해서는 확실히 알려져 있지 않으나 오곡풍작을 기원하는 덴가쿠(田楽)에서 그 흔적이 남아 있다하여 역사서의 기록을 몇 개 들 수 있습니다. 제일 처음 등장하는 것은 「아와지토키와구사(淡路常磐草)」(나카노 야스오저 (仲野安雄著), 1730年)으로 「…중추의 제사 때에는 야부사메(流鏑馬:달리는 말 위에서 활을 쏘아 맞추는 것), 스모오(角力:일본식 씨름) 등이 있고, 또한 평소때와는 달리 농가의 옷을 입고 허리에 작은 장구를 달고 달리는 승려의 모습이 예부터 전해지는 풍습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 후 「아와지구사(淡路草)」(후지이 요우신・쇼우민 저(藤井容信・彰民著、1825년)、「가키와구사 堅盤草)(와타나베 겟세키 渡辺月石著、1832년)、「미찌구사(味地草))(코니시 토모나리・긴코우 저 (小西友直・錦江著)、1857년)에도 쓰여져 있습니다, 또한 분세이(文政)12년(1829)에는 眞野和泉(まの・いずみ)(暁梅(ぎょうばい))에 의해「伝来の巻物(でんらいのまきもの)」가 쓰여 졌습니다. 여기에 그려져 있는 동작과 현재 춤 동작을 비교해 봤을 때 거의 같은 동작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사사라오도리 사사라오도리

오오쿠보 오도리 (大久保踊り)

미나미 아와지시 야기(八木) 지역에서 에도시대 중기부터 우란봉(盂蘭盆)이나 기우제 때 춤을 추었습니다. 텐메이(天明)시대 (1781 89)에 기근과 심한 빈곤을 다이칸죠(代官所)에 상소를 올렸다 처형을 당한 농민 미야무라 사이조(宮村の才蔵)의 영을 위로하기 위해 시작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노래에 맞춰 춤을 춤 때 5가지의 손춤「테 오도리(手踊り)」 와 새털이 달린 창・칼・낫・종이로 만든 우산 등을 사용한 6종류의 도구춤 「도구 오도리(道具踊り)」가 있습니다. 노래는 큰 북 하나로 반주합니다. 춤마다 각각의 가사, 북 치는 법, 의상, 갖추는 것이 바뀝니다. 노래는 조루리에서 기인한 것이 많고 정서적인 것과 용감하고 활달한 내용이 있습니다. 우산춤에서는 「메이보쿠 카사네 모노가타리 도하시노 단(薫樹累物語土橋の段)」을 연기합니다.

오오쿠보 오도리는 보존회뿐만 아니라 효고현립 미하라(三原)고등학교의 체육제, 미나미 아와지시립 미하라중학교 문화제, 미나미 아와지 시립 야기초등학교 운동회에서도 춤을 추며 남녀노소 즐길 수 있습니다. 안무는 사오지(佐尾寺) 주지 교운(教雲)의 지도에 따르고 있다고 합니다. 노래에는 「하시온도(端音頭)」(손춤용),「기리온도(切音頭)」「고샤쿠부시(五尺節)」 (도구춤) 3종류가 있습니다. 아와지의 대표적인 민속예능의 하나입니다.

오오쿠보 오도리